http://mausk.tistory.com/82#comment9619149
45acp
2008/03/09 08:58
고향 마을 사람 절반이 빨치산에게 학살당한 이야기를 밥상머리에서 교육받았던 저로서는 저들의 죽음에 결코 동정이 가지 않습니다. 아니 동정을 해선 안된다고 생각하는게 맞겠네요...
49년 봄, 경찰에 쫒기던 한 청년을 마을에서 받아 주던 것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서울에서 공부 꽤나 하고 온듯한 그 청년을, 식자들을 존중하던 마을 관습상 손님으로 받아 들였고, 어느 부농(그래봤자 상대적으로 밥을 덜굶는)의 머슴방에 먹여주고 제워 줬었더랬지요. 그 머슴방에선 서울 소식이니 세상 소식이니에 굶주린 청년들과 동네 머슴들이 놀려와 밤세 불이 꺼질 줄 몰랐고, 몇달 뒤 그 청년은 머슴 몇과 함께 마을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근처 마을에 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마을사람들은 풍문이나마 그들이 마을에서 몇십리 떨어진 곳에 산채를 짓고 빨치산이 되었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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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가을이 되었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지 일년 좀 지났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새정부에 내는 첫 세금으로 수확한 곡식중 일부를 지게에 지고 읍내까지 가는 사이에 산위에서 아래로 울려퍼지는 기묘한 메아리소릴 들었습니다. "이승만이에게 세금 내면 죽인다. 괴뢰 부르조아 정부에 세금 바치지 마라~!" 대다수는 저게 무슨 소리람? 하며 무시했고, 할아버지댁에서 50미터 떨어진 데서 사는 정노인도 마찬가지로 무시하면서 지게에 쌀한가마를 짊어진체 읍사무소에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정노인 집앞에 대나무 장대 같은 것을 지닌 청년 둘이 들이 닥쳤습니다. 뭔가를 물어볼 게 있다는 소리에 정노인은 문을 열고 나왔고 그 순간 죽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일명 빨치산이 되어 돌아온 머슴들이었던 것이지요. 정노인을 살해 한것은 마을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던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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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사람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일부 청년들은 눈에 핏발이 서기 시작했습니다. 이들 '빨치산'의 활동이 왕성해지고 겨울이 가까이 올 무렵 경찰들이 토벌대란 것을 보내 주변 산자락을 수색했고 마을 청년중 일부가 길안내를 했습니다. 그러다 빨치산의 산채에 도착했으나, 그들은 경찰들이 오는 것을 미리 확인하고 일찌감치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경찰과 해어져서 내려오던 한 마을 청년은 덤불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무게 마을 놈들 경찰 끌고 우리 몰살하러 온거 다 안다. 너희놈들 우리가 12월 초하룻 날 까지 전부 몰살시켜버릴 줄 알아라." 사라졌던 머슴의 목소리였고, 그 마을 청년은 겁에 질린체 마을로 달려와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당연 마을은 발칵 뒤집혔고, 쓸데없는짓을 했다면서 청년을 나무랐으나 어떻게 해 볼 도리는 없었습니다. 경찰과 토벌대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가버린 뒤였고요. 사람들은 짐을 싸들고 빨치산이 경고했던 그 날 하루 전에 근처에 산속으로 숨어서 마을에 진짜 그들이 들이 닥칠 지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지 않았고, 추위를 견디기 힘든 부녀자와 어린이 노인들을 더이상 노숙시킬 수 없다면서 일부는 산을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당시 조금 고등 교육을 받았던 할아버지는 생각해보면 쳐들어 오는 것을 미리 예고 하고 오는게 더 이상한게 아니냐면서 좀 더 숨어서 동태를 지켜보자며 증조할아버지 내외와 할머니 아직 어렸던 아버지와 삼촌들과 함께 산에 남았고, 다른마을 사람들도 절반쯤 남아 하루를 더 지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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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할아버지는 산기슭에 숨어 마을을 지켜보다 경악했습니다. 하루 늦게 그들은 마을에 들이 닥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먼저 내려간 부녀자와 아이들, 노인들을 끄집어 냈습니다.  그러고는 죽창으로 위협해 동내의 조금 큰 집 사랑체에 몰아넣는게 모였고 그 다음에 불을 질렀다더군요. 그때 할아버지와 같이 숨어 지켜보던 먼 친척분은 먼저 내려보낸 처자식과 부모가 끌려들어가는 것을 보고 할아버지가 말릴 세도 없이 마을로 달려 가버렸고, 할아버지는 그들이 사라지고 불길이 다 거질때 까지 덜덜떨며 그자리에 계속 굳어있었습니다.
그후 나머지 마을사람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면서 제일먼저 발견한것은 반쯤 깨어진 머리를 도랑에 처박은 체 얼어붙에은 친척 분의 시신이었고, 그 다음에 빨치산이 불을 지른 사랑채에서 불에 타 숯덩이가 된 남녀노소의 시신 40여구를 마저 더 발견했다더군요. 하루 아침에 마을인구 절반이 사라졌다는 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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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벌대는 그 일이 있고 하루 뒤에 마을에 들이닥쳤고 그것은 그것대로 마을사람들을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토벌대가 안내자로 끌고온 빨치산 포로는 예의 그 머슴들 중 하나였고, 토벌대는 마을사람들이 절반이나마 살아남은것을 수상히여기며 그 포로에게 내통자를 지적하라고 윽박질렀습니다. 그 포로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아무나 지적했고, 그중에는 저희할아버지도 끼어있었습니다. 그후 할아버지는 다른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읍내 주재소로 끌려갔고, 반 죽음이 된 후에야 석방되었습니다. 웃기는 것은 그 포로도 함께 풀려나왔다는 것이지요.
근대적 사법처리와 취조시스템따위는 전혀없던 시절이라 가능한 게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빨치산들은 이듬해 봄에 완전히 전멸한 것으로 이야기는 끝납니다. 그것도 토벌대와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것도 아니고 발진티푸스가 돌아 산채에서 이미 죽었거나 거의 다죽어가며 웅크리고 있던 빨치산들을 토벌대들이 확인사살했다더군요. 거기에는 당연히 그 서울에서 온 청년도 끼어있었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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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건을 80대 후반의 나이에도 또렸이 기억하며 이야기해주시던 할아버지에게 몇가지를 더 물어 보았지요.  빨치산들이 전멸할때 마을 사람들이 다시 복수하기 위해 거기에 올라 갔는지, 그리고 같이 풀려나왓다던 빨치산 포로들은 어떻게 되었는지를. 할아버지의 대답은 전혀 예상밖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올라가지 않았고 그때 석방되었던 빨치산 포로는 지금도 옆마을에서 처자를 두고 같이 살고 있다더군요. 뭔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돼서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대답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무서워서.... 그리고 그때 일은 동네사람들 누구도 다시 떠올리기 싫으니까 그냥 잊어버리고 예전대로 살고 싶었어." 저는 이 대답에서 '충격과 공포는 증오마저도 잠식한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일명 빨치산들의 학살행위에 대해, 정작 겪었던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별로 내지 않는 이유도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안되지만 감정적으로는 이해가 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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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어 그러한 '의도된 망각'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이후 그 상처를 속으로 싸매둔 체 지금까지 계속 전진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러한 '의도된 망각' 은 일명 좌파에게는 전혀 해당되는게 아닌거 같더군요. 아니 그 틈을 비집고 더욱 뻔번해진거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난10년간의 행태를 볼때.... 주인장께서 말한대로 그들은 향불을 피고, 대학마다 추모제를 열고, 전향하지 않은 장기수들을 선생이라 부르며 추종하다..꼿꼿이 죽으면 통일열사로 추앙하고 조기까지 게양한다지요.. 그들은.....
그들이 과연 저렇게 죽은 사람들을 위해선 향불을 피웠을까? 피운다해도 미제와 친일 부르주아지를 타도하기 위한 투쟁과정의 어쩔 수 없는 죽음이라면서 악어의 눈물 몇 방울 정도나 흘리고 말 겠지요. 아니 향불을 피워 줄 필요도 없으니 과연 그들이 피해자, 열사놀이를 할 입장이나 될런지 스스로에대해 되돌아 봤으면 좋겠습니다. 바랠걸 바래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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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49년도의 봄에 마을에 숨어든 그 청년과 같은 자들을 추앙하기 바쁘겠지요. 작년에 돌아가신 할아버님은 돌아가시기 몇달전에 그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80대 후반이 넘은 그때 조차도 그들이 왜 마을에 그런짓을 해야만했는지 궁금해했지만 답을 찾지는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들의 죽음에 결코 동정이 가지 않습니다. 아니 동정을 해선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긴 잡글입니다. 주인장께서 쓰신글을 보는 순간 생각나서 주절거렸습니다. 쓰다보니 비로그인 댓글에 트랙 백 감이지만, 그냥 이대로 마무리하는것 좌송하게 생각합니다.

45acp
2008/03/09 15:45
무고한 정부군의 학살 하니까, 거창양민학살의 책임자이자 나중에 북으로 튀어 민족통일애국열사릉에 묻힌 최덕신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일명 좌파들은 노근리는 큰소리로 떠들어도, 거창은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작고요. 비약적인 음모론이긴 하지만 최덕신은 혹시 정부 수립 전부터 북에 포섭되었던 5열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도 해본적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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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직후 그리스에서 벌어진 공산 빨치산 ELAS 와 정부군과의 싸움에서도 서로 내부에 5열을 잠입 시켜, 양민학살을 주도하고 서로 그 혐의를 서로에게 뒤집어 쒸웟었다는 이야기를 어딘가에서 본기억이 납니다.
분명히 정부군의 학살은 있었습니다. 억울한 죽음도 많았고, 그걸 가슴속에 싸맨 체 힘겹게 반세기를 살아온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국가는 저런 피칠갑으로 살아남은 대한민국이며, 빨치산들은 그것을 전복시키고 역시 피칠갑 위에서 지들만의 유토피아를 만들려던 자들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그들은 지금까지 여전히 살아있는 대한민국이란 테제에 대항했던 反徒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부군의 학살을 그들의 학살과 같은 위치에서 양비론적으로 보는것은 저는 반대합니다. 그런 시각은 이 대한민국이란 테제가 사라지고 한참 뒤 새로운 태제가 생길때나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지요. 그리고 일단 저 대한민국이란 테제아래에서 자라온 저로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의리가 없음에도 그것을 부정하고 그 테제를 무너뜨릴려 하는 자들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빨치산 추모와 찬양은 결국 대한민국이란 테제를 무너뜨리자는 말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이 환술로 투영시킨 이상적 미래가 지금의 테제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사상적 지주가 그들의 사상적고향에서 벌인 작태를 감안하자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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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냉전적 사고에 물든 친미친일 사대매국 파쇼수구꼴통의 변이었습니다. 왜 이모양이냐고 물으시는 분에겐 지난 10년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불리할때 만 똘레랑스를 강조하고 숨어버리면서 자신이 강대해질때는 말을 뒤집던 일명 진보지식인들 덕이지요.
게다가 지난 10년은 대한민국이 여전히 냉전중인 국가라는 사실을 여실히 각인시킨 세월이기도 했구요. 북괴(일부러 이런 표현을 씁니다.)가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시각을 확인하고는 모골이 송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부정확한 핵무기는 결국은 대한민국의 민간인만 노릴수 있으며, 그것으로 우리를 굴종적 대북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한 인질로 삼고있습니다. 남한의 대통령은 북한에 방문해 기념식수에 머릿돌을 새길때도 위대한 장군님과 이름을 같이 쓰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햇볕은 그들의 코트를 벗기기는 커녕 이 나라를 가뭄속의 논바닥처럼 이리저리 쩍쩍 갈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이 가뭄은 앞으로도 좀더 이어질 것같고요....
 
45acp
2008/03/10 00:03
저는 좌익들의 논리가 설땅이 없게 만들게 하기 위해서 교육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결정적인 해결책이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북의 체제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강제적인 무력침공을 주장하는게 아닙니다. 내부에서 무너지게 만들 방법도 많고, 그렇게 될 가능성도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얼마전 제인디펜스 위클리에서는 북의 붕괴시한을 미니멈으로 6개월로 잡고 있더군요. 그 증거로 김정일이 숨겨놓은 각종 비자금들이 바로 인출할 수 잇는 유동자산으로 전환되고 있는 움직임을 포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민들의 명줄을 쥐고 잇던 배급 시스템도 부패속에서 완전히 무너져, 이미 인민의 60%가 배급과 관계없이 '자력갱생'중이고 김정일의 실제권력은 호위총국의 정예 12만이 지키는 평양일대로 축소되어 가고 있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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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평양시민 300만만 있으면 나머지는 다 굶어죽어도 북조선은 끄떡없다던 장군님의 교시도 있었지만.... 그래서인지 올해 초부터 북한 급변(체제붕괴) 가능성도 계속 제기되고 있고, 만약 그러한 사태시에는 중공군이 유엔승인 없이 조중 우호조약에 근거해 북한을 선점할 가능성도 ISIS같은 기관의 논문을 통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김정일은 당뇨 30년차에 무절제한 생활이 겹쳐 혈관성치매현상과 실명징후가 보이고 남은 수명은 아무리 길게잡아도 3년이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에 우리는 손가락을 빨고만 있어선 안됩니다.
노무현 정권 당시 강제로 연기되었던 작계 5029에따르면 북한 붕괴시 한미연합사가 북한의 주요 군사시설을 접수하고 한국군은 인도적 지원에 따라 수용소 해방과 난민구호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정권붕괴시의 혼란에 대한 인도적 개입이라는 것입니다. 저가 북의 붕괴를 언급하는 것은 그 상황에서 이념과 체제의 실패를 만천 하에 드러낼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전국토의 절반이 게토가되어 서서히 말라죽어간 현장, 이념의 원수들을 3대에 걸쳐 씨를 말리기 위해 만들어진 완전통제구역이 드러나게 되면 그동안의 모든 허위는 눈녹듯이 사라질 것입니다. (잘사는 북조선인 중국에 의해 북한이 점거되면 그런 기회는 오지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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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드 오브 브라더스 9편에서 나왔던것처럼 다하우 수용소를 해방시키고 난 후에야 병사들이 자신들이 뭘 위해 싸웠는지를 깨달았던 것 처럼, 그리고 바로 옆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흘러나옴에도 억지로 무시하고 일상을 영위했던 독일인들이 그 실상을 보고 경악했던 것처럼, 그래서 나치즘이 영원히 몰아내야할 금기가 된것처럼, 북의 체제와 주체사상은 폐기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것은 어떠한 교육보다도 더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비현실적인 이야기라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의 바램(그냥 이대로)과 달리 선택을 강요당할 때가 조만간 닥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2MB도 자신의 임기중에 북한이 붕괴될것같다는 불안을 인수위에서 계속 토로했다더군요.  그러나 웰빙기회주의 정당인 딴나라당에 그것에 대처할 의지가 있다고 보기는 힘든(이 치들은 이 치들대로 미국이 알아서 하겠지 식의 안이한 사고에 빠져있습니다.) 만큼 민간차원에서라도 한시 바삐 북한의 붕괴에대해서 공론화하고 고민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핵심, 잘못된 지식의 원천이자, 좌익이라고도 부를수 없는 남한의 주체 태양민족 나치즘 신도들의 사상적 고향의 실체가 드러난다면 그 어떤 교육보다도 신속하고 확실한 효과가 나지않을까요?

 

Posted by joogu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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